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2007.9.24 냉장고의 꿈

       
2006.04.05


이런 거짓말 같은 날이라면

왠지 어떤 이야기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.

가령 내가 정말 정말 좋아하는 사람의 꿈에 나왔던 고양이가

'고양이는 저마다 자신의 별이 있다'
는 말을 듣고 자신의 별을 찾아 헤메다 지쳐

잠들어 버렸을 때 꾸게 된 꿈에

내가 나왔다던가와 같은 이야기 말이다.
Image From : AgnesPterry
http://agnespterry.deviantart.com/gallery/
Image From : ireallyamzach
http://ireallyamzach.deviantart.com/
지금부터 하려는 이야기는 지난 밤 새벽 우울한 기분에

매점으로 아이스크림을 사러갔을 때

불 꺼진 매점의 냉장고를 바라보며 생겨났던 허탈한 마음이

냉장고의 허탈함과 동조하여 가능하게 된 냉장고와의 대화이다.


냉장고는 처음으로 사람과 얘기할 수 있게 된 것이 신기했던지

쉴 새 없이 냉각기 팬을 돌려가며

내게 이러저러한 일들을 이야기해 주었다.
Image From : yvel
http://yvel.deviantart.com/
자신의 어머니는 수백만 개의 팔을 가진,

여느 자식이 많은 어머니들처럼 다정하고 커다란 분이셨는데,

자기가 태어날 때쯤만 해도 자신의 형제들을

모두 그 강한 팔로 얼러주시며

자신들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나가 주셨다고 했다.

어머니께서는 앞으로 세상에서 자신이 해야 할 일들과

문제가 생겼을 때는 어느 부분을 빨갛게 빛내며 울어야 한다는

따뜻한 조언들도 있지 않으셨으며, 앞으로 옷을 입은 후에 시작될

영원을 경계로 한 이별에 대해서는 크게 마음 쓸 일 없다는

당부를 하셨다는 이야기는 상당히 새롭게 다가오는 이야기였다.
그러면서 자기는 착향 색소가 들어간 아이스크림 보다는

과일을 품어보고 싶다고 했는데,

사람들이 그런 얼린 과일을 별로 좋아하는 것 같이 않으며,

일단 자기 안에 들어왔던 과일들은


그 찬란한 노란빛을 잃고 곧 죽을 것처럼

얼굴이 검게 변하는 얼린 바나나 꼴이 되어

나가게 되니 퍽이나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고 했다.
Image From : ankl
http://ankl.deviantart.com/
Image From : Ivan Marcano
http://imarcano.deviantart.com/
나는 슬슬 졸려오기도 하거니와

다음날 있을 일반 물리 실험이 걱정되기도 하여

냉장고에게 지금까지 가장 정성스럽게 품어왔던 것이

무엇이냐고 물어보았다.

그랬더니 냉장고는 그 육중한 몸을 몇 차례 흔들어

내부가 훤히 보이는 왼쪽 창 중앙에 무엇인가를 올려 보내왔다.

그것은 어딘가 조금 동그랗게 보이면서도 푸른빛이 살짝 감도는

희고 밝게 빛나는 물체였다.
Image From : InsideMe
http://insideme.deviantart.com/
냉장고가 말하길

그 물건은 자기가 처음 이 매점에 몸을 들였을 때,

그 때가 서늘하고 쌀쌀한 게 꽤나 기분 좋은 날씨였는데,

매점 아주머니의 딸로 보이는 어린 아이가

매점 밖에서 희고 부드러운 가루 같은 것을 손으로 살짝 뭉쳐

자신의 깊은 곳에 묻어 두고 간 것이라고 했다.

그렇게 소란스럽지도 않고

수수한 성격이 말에서 드러나는 분이었는데,

어째서인지 날이 갈수록 몸이 점점 사라져 가는 것 같았다고,

냉장고는 살짝 물기가 감도는 목소리로 말했다.
Image From : Ginsui-rin
http://ginsui-rin.deviantart.com/
그 분이 말하길 자신의 자매, 친구들은 전부 이 땅을 떠났으니

자기도 언젠간 땅에서 볼 수 없게 될 날이 올 것이라고 했단다.

냉장고는 점점 작아지는 몸을 하며 그런 말을 하는 모습을 보는 게

왠지 모르게 창이 열린 듯 허전하고,

몸 안에 서리가 끼는 듯이 따끔따끔해 와서

처음 그 분이 들어 왔을 때처럼 온도도 차갑게 맞춰주고,

모습도 가장 비슷했던 서리를 먹여가며 지금 까지 품어왔다고 했다.
Image From : nyctopterus
http://nyctopterus.deviantart.com/
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말수도 점점 적어지고,

피부도 점점 딱딱하게 굳어가

이제는 잠을 자는 것처럼 조용해졌다고 했다.

이젠 몸도 좀 건강해 진 것 같으니 일어나서

다시 말을 건네 줬으면 하는데도,

이렇다할 반응이 없어 계속 신경이 쓰인다는 냉장고에게

나는 아까의 그 고양이 이야기를 떠올리면서

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해주었다.
Image From : Yaga Kielb
http://www.yagak.com
http://yagak.deviantart.com/
"만약 그 분이 잠들어 있는 거라면,

당신도 잠들어 그 분의 꿈을 찾아가 보세요.

물론 잠든 이의 꿈을 찾아 들어가

그 분을 다시 만나게 되는 것이 쉽지는 않겠지만,

그래도 아무것도 안하고 있는 것 보단 나을테고,

나와 대화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과도 같은 우연이

겹치게 될 수도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?"
냉장고는 잠시 고민하더니 이내 한번 해보겠노라고 말했다.

그리고는 고맙다는 한 마디를 남긴 채 냉각기 팬 소리의 긴 여운만을

매점에 남겨두고 여느 냉장고와 같은 모습으로 돌아갔다.



누가 이 이야기를 모두 읽을지, 믿어 줄지는 알 수 없지만,



난 여전히 그 날 새벽 4시까지

매점에서 울려 퍼지던 냉각기 소음을 잊을 수가 없다.
Image From : gilad
http://gilad.deviantart.com/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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